덕유산에 들었습니다.
햇살이 눈부셔 훔쳐 낸 하루,
코스모스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.
가을 덕유는 어느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.
떠나야 할 것들과 남아서 계절을 지켜야 할 것들이
아름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.
향적봉 가는 길,
이제야 비로소 초록빛 버리고
본래의 빛깔로 돌아간 나뭇잎들이
노랗게, 빨갛게, 갈빛으로 저물어갑니다.
저 길을 걸어 가을 속으로 갑니다.
가을 숲은 고요하고
바람은 가만가만 목덜미를 만지고 갑니다.
깊이를 알 수 없는 바람의 속살,
가을 단풍속에서 나도 물이 들고 있나봅니다.
투구꽃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.
화려한 단풍에 가려진 보랏빛 작은 얼굴.
덕유의 맨 위,
향적봉 바위위에 앉아 잠시 땀방울을 날렸습니다.
산은 피로해 보입니다.
봄내, 여름내,
지치도록 뛰어 온 발걸음
잠시 멈추고 고요히 뒤 돌아 봅니다.
다리가 쉬자고 합니다.
배도 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.
잠시 쉬어 가야 되겠습니다.
네 사람을 위한 행복한 식탁이 펼쳐지고
에구구,
지인이 가져 온 달콤힌 오디주에
나도 단풍물이 들었습니다.
이제,
또 다시 뭍으로 가야합니다.
아,
산의 품에서 살고 싶은데...
아!!
용담.
이 높은 곳에서 낮게 낮게 피어오른 꽃송이들...
쑥부쟁이꽃이 지천을 이뤘습니다.
새하얀 구절초가 눈이 부십니다.
덕유의 가을꽃들을 보니 가슴에서
콩닥콩닥 소리가 납니다.
덕유를 지키고 선 죽은 주목들...
가을 산은 이제 피로를 날리고
쉬려나 봅니다.
떠나 보낼 것들 다 보내고
긴 꿈을 꾸려는 것이겠지요.
나도 그 곁에서 겨울잠이나 잤으면 좋겠습니다.